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기도의 효과 (상관관계, 무작위배정, 혼입변인)

by tongdoctor 2026. 5. 25.

기도가 실제로 사람의 수명을 늘려준다고 믿으시나요? 저도 한때는 그냥 당연한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걸 과학적으로 검증하려 했던 사람들의 연구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생각보다 훨씬 쉽게 흔들립니다. 더 흥미로운 건, 기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보였다는 점입니다.

 

갈톤의 기도 연구: 왕족은 오래 살았을까

19세기 영국의 통계학자 프란체스 갈톤은 다윈의 사촌이자, 당시 기준으로는 굉장히 파격적인 질문을 던진 인물입니다. "기도는 진짜로 효과가 있는가?" 그는 이걸 그냥 믿음의 영역으로 두지 않고, 데이터로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갈톤이 선택한 방법은 단순했습니다. 영국 왕실의 왕과 왕비는 당시 국민 전체의 기도를 받는 존재였습니다. 매 주일 예배마다 왕실의 건강과 장수를 비는 기도가 올려졌으니, 기도에 효과가 있다면 왕족이 가장 오래 살아야 마땅합니다. 갈톤은 이들의 평균 수명을 귀족, 법조인, 군인 등 비슷한 계급의 사람들과 비교했습니다. 데이터를 다룰 때도 꽤 꼼꼼했는데, 영아 사망률이나 전쟁 중 사망처럼 자연 수명과 무관한 케이스는 미리 걸러냈습니다. 이게 요즘 말로 하면 데이터 전처리에 해당합니다.

결과는 예상을 뒤집었습니다. 왕족의 평균 수명은 오히려 다른 계급보다 낮게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갈톤이 "기도는 해롭다"고 단정 지은 건 아닙니다. 여기서 핵심 문제가 드러납니다. 바로 혼입변인(confounding variable)입니다. 혼입변인이란 내가 보고자 하는 원인(기도) 외에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변수를 말합니다. 왕족은 극심한 정치적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일상적인 위험도 훨씬 많았습니다. 음식이나 의료 수준은 높았지만, 스트레스는 반대였을 수 있습니다. 이런 조건을 동시에 통제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갈톤의 연구는 상관관계(correlation) 연구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상관관계 연구란 이미 자연적으로 형성된 집단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연구자가 변수를 직접 배정하지 않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증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왕족으로 태어날지, 평민으로 태어날지를 연구자가 지정할 수 없으니까요. 이 연구는 훗날 통계학의 회귀분석 개념이 발전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갈톤의 연구에서 제가 주목했던 건 숫자 차이의 의미 문제였습니다. 64세, 65세, 68세처럼 몇 살 차이가 났다고 해서 그게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인지 판단하려면, 분포의 변산(variability)을 함께 봐야 합니다. 변산이 크면 작은 차이는 그냥 우연일 수 있고, 변산이 작다면 같은 차이도 충분히 유의미할 수 있습니다. 19세기에 이 발상을 했다는 게 지금 봐도 놀랍습니다.


하버드 기도 연구: 무작위배정으로 한 단계 더

1980~90년대, 하버드 의대 교수팀은 갈톤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훨씬 정교한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심장 수술을 받고 입원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제3자가 드리는 중보기도(Intercessory Prayer, IP)의 효과를 측정한 연구입니다. 중보기도란 기도하는 사람이 중간에서 절대자에게 다른 사람의 회복을 대신 간구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이 연구의 핵심은 무작위배정(Randomized Assignment)입니다. 무작위배정이란 연구자가 참가자를 임의로 각 집단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어떤 집단에 누가 들어갈지를 확률에 맡겨버립니다. 이렇게 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혼입변인들이 양 집단에 골고루 퍼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특정 그룹에 건강한 사람만 몰리거나, 젊은 사람만 몰리는 선택 편향(Selection Bias)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선택 편향이란 연구자나 참가자의 의도적·비의도적 선택이 결과를 왜곡하는 현상입니다.

연구팀은 세 그룹을 구성했습니다.

  • 그룹 1: 기도를 받으며 기도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집단
  • 그룹 2: 기도를 받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집단
  • 그룹 3: 기도를 받지 않으며 그 사실도 모르는 집단

그룹 2와 그룹 3을 비교하면 기도 자체의 효과를 볼 수 있고, 그룹 1과 그룹 2를 비교하면 기도받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의 심리적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설계를 처음 봤을 때 감탄했던 건, 이렇게 컨트롤 그룹을 두 개나 만들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보고자 하는 변인이 두 가지였으니 그룹도 두 개가 필요했던 거죠.

기도하는 사람도 환자와 면식이 없는 교인을 모집하고, 기도 문구도 표준화해서 모든 기도자가 동일한 방식으로 기도하도록 했습니다. 이게 바로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에서 나오는 표준절차입니다. 조작적 정의란 추상적인 개념을 측정 가능한 구체적 행동이나 절차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게 사람마다 방식이 다르면, 어떤 사람은 5분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1시간 기도할 수도 있으니까요(출처: PubMed - Harvard prayer study).


기도받는 걸 알면 오히려 더 위험하다: 결과가 말해주는 것

이 연구의 결과는 꽤 날카로웠습니다. 기도 자체의 효과는 없었습니다. 그룹 2와 그룹 3 사이에 합병증 발생률 차이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더 주목할 부분이 있었습니다. 기도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그룹 1에서 합병증 발생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게 나왔습니다. 심장 수술이라는 중대한 상황에서, "내가 기도를 받을 만큼 상태가 나쁜 건가?"라는 심리적 부담이 오히려 회복에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수능 전날 엄마가 100일 기도를 드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학생을 생각했습니다. 그 마음씀씀이가 고맙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내가 그만큼 걱정될 상황이구나"라는 부담감이 생기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기도의 역설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연구가 갈톤의 연구보다 한 단계 앞선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독립변인(X)과 종속변인(Y)을 명확하게 조작적으로 정의했습니다.
  • 무작위배정으로 혼입변인을 확률적으로 분산시켰습니다.
  • 블라인드 설계(Blinding)를 통해 기도자와 환자 양쪽의 정보 교환을 차단했습니다.
  • 표준화된 기도 절차로 측정의 일관성을 확보했습니다.

물론 이 연구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읽으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기도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 기도를 받지 않는" 조건, 즉 대조군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 조건이 빠진 데는 아마도 윤리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실제 임상 연구에서는 윤리 심의위원회(IRB)의 검토를 통과하지 못하면 연구 자체가 중단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이처럼 과학적 연구에는 방법론의 정교함 뿐 아니라 윤리적 제약도 함께 작동합니다(출처: PubMed Central).


결국 두 연구가 공통으로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것들이 실제 데이터 앞에서는 흔들릴 수 있다는 것. 그게 불편하더라도요. 저는 이 두 연구를 보면서 과학적 사고의 핵심이 "기존 믿음을 의심하는 것"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상식조차도 인간의 인지적 편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으며, 그 편향을 걷어내기 위한 도구가 바로 실험설계와 통계입니다. 기도의 효과를 믿든 믿지 않든, 이 연구들이 과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본인이 가진 믿음을 한 번쯤 이런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것, 그게 시작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학습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문헌

https://pubmed.ncbi.nlm.nih.gov/16569567/

 

Study of the Therapeutic Effects of Intercessory Prayer (STEP) in cardiac bypass patients: a multicenter randomized trial of unc

Intercessory prayer itself had no effect on complication-free recovery from CABG, but certainty of receiving intercessory prayer was associated with a higher incidence of complications.

pubmed.ncbi.nlm.nih.gov

https://galton.org/essays/1870-1879/galton-1872-fortnightly-review-efficacy-prayer.html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