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저는 꽤 오랫동안 "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믿었습니다. 근거도 없이 그냥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서 그 믿음 자체가 이미 착각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는 순간, 그건 진실을 파악한 게 아니라 제 머릿속에서 혼자 납득한 것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우리가 '현실을 본다'는 착각
혹시 위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와인잔만 보이다가, 누군가 "저기 사람 있어"라고 알려준 뒤 갑자기 사람이 보인 경험 있으신가요? 저는 그 경험이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한번 보고 나면 절대 못 본 상태로 돌아갈 수가 없거든요. 이게 바로 현실 구성(Construction of Reality)의 핵심입니다. 현실 구성이란,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뇌가 능동적으로 만들어낸다는 개념입니다.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장면을 회상할 때 우리가 실제로 저장한 건 극히 일부이고, 나머지는 뇌가 그럴듯하게 채워 넣습니다. "을지로"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양복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골목을 떠올리고, "대학가"라고 하면 젊은 사람들이 가득한 풍경을 떠올리는 것처럼요. 이건 기억이 아니라 재구성입니다.
이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게 탑다운 처리(Top-down Processing)입니다. 탑다운 처리란 과거 경험, 기대, 선입견 같은 상위 개념이 지각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말합니다. "정치인은 다 그렇지", "판사라면 보수적이겠지" 같은 판단이 대표적입니다. 제 경험상 이게 나쁜 버릇이라는 걸 알면서도 완전히 끊기가 어렵습니다. 모든 판단에 어느 정도는 탑다운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 현실을 본다는 건, 말하자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착각이 생기는 이유도 여기서 출발합니다. 제 생각에 착각은 대부분 "내가 편한 것"을 선택한 결과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가장 쉽거나, 내가 원하거나, 혹은 그냥 익숙하거나. 그래서 자기가 원하지 않는 정보는 받으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릅니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기존 믿음을 지지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박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인지적 편향입니다(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사람을 볼 때 작동하는 다른 알고리즘
그렇다면 우리는 사물을 볼 때와 사람을 볼 때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까요? 저는 처음에 당연히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회인지(Social Cognition) 연구를 접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사회인지란 내가 타인을 어떻게 이해하고, 왜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추론하는 일련의 인지 과정을 말합니다.
사물을 인식할 때는 대상이 움직이지도 않고 의도도 없습니다. 반면 사람은 다릅니다. 완전히 아는 것도, 완전히 모르는 것도 아닌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추론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심리학자들이 별도로 이 분야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지심리학이 기억이나 지각 같은 보다 기초적인 과정을 연구한다면, 사회인지는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실험이 있습니다. 1946년 심리학자 애쉬(Asch)는 동일한 사람을 묘사하는 단어 목록에서 딱 하나, "따뜻한(warm)"과 "차가운(cold)"만 바꿨습니다. 그랬더니 그 단어 하나가 나머지 모든 특성에 대한 평가를 통째로 바꿔버렸습니다. "지적이다"라는 단어조차 "차갑다"는 맥락 안에서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이를 중심 특질(Central Trait) 효과라고 합니다. 중심 특질이란 인상 형성 과정에서 다른 모든 특성의 해석 방향을 결정해버리는 핵심적인 특성을 말합니다.
이게 바텀업(Bottom-up) 방식, 즉 하나하나 정보를 쌓아가는 방식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긍정 단어의 합산이 아니라 전체 인상이 하나의 맥락으로 재구성된다는 것이죠. 인상 형성에는 분절적인 요소들의 합산(elemental)과 전체적 재구성(holistic), 두 방식이 동시에 작동합니다.
사회인지 분야의 주요 연구 동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귀인(Attribution): 타인의 행동 원인을 추론하는 과정. 내부 귀인(성격 탓)과 외부 귀인(상황 탓)으로 나뉨
- 중심 특질 효과: 하나의 특질이 전체 인상을 재구성함 (Asch, 1946)
- 탑다운 처리: 기존 도식이 새로운 정보 해석에 영향을 미침
- 확증 편향: 기존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
우리 사회가 창의성을 잃는 이유
사람을 납득하는 방식이 이렇게 작동한다면, 사회 전체의 분위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혹시 주변에서 "나를 불편하게 하는 건 다 잘못된 것"이라고 반응하는 경우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요즘 이런 태도가 굉장히 많아졌다고 느낍니다. 나와 다른 생각, 다른 냄새, 다른 말투. 그걸 틀린 것으로 간주하는 분위기 말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건 같은 뿌리에서 나옵니다. 타인의 행동을 납득하는 방식 자체가 "내 기준에 맞으면 이해, 안 맞으면 거부"로 굳어진 겁니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게 진실에 다가가는 게 아니라, 내 머릿속의 틀로 상대를 집어넣는 행위라는 걸 모르면 이런 태도가 나옵니다.
제 경험상, 진화론이 교과서에 실리고 창조론이 실리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게 더 선명해집니다. 진화론은 반례를 찾을 수 있는 구조, 즉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을 갖추고 있습니다. 반증 가능성이란 어떤 주장이 틀렸음을 원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논리적 여지를 갖춰야 과학으로 인정된다는 기준입니다. 땅을 파보니 그 시기의 뼈가 나왔고, 그 증거들이 하나의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반면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야"라는 인상은 반증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냥 납득이 됐으면 끝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창의성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노벨상은 결국 기존의 납득 구조를 깨는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만 명의 이상한 사람 중에 한 명이 천재인데, 그 이상함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라면 그 천재도 그냥 또라이로 걸러지고 맙니다. 개인의 차이와 타인의 선호를 위해 내가 얼마나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느냐, 그게 바로 자유의 실질적인 척도입니다. 사회인지 연구에서도 문화권에 따라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결국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타인을 납득하고 있습니다. 그 납득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부터, 조금 더 다른 사람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다음번에 누군가를 보고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는 생각이 들 때, 한 번쯤 "내가 납득하려는 건 아닐까?"라고 되물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질문 하나가 생각보다 많은 걸 바꿔줍니다.
참고: https://www.canyons.edu/_resources/documents/academics/onlineeducation/Psych126TextbookFinalV1_2.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