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줄 알았어." 이 말, 저도 참 자주 했습니다. 문제는 그때마다 제가 정말 알았던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결과를 본 뒤에야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는 이 현상, 알고 보면 인간 인지의 구조적인 오류입니다. 학문하는 사람에게는 특히 치명적인 함정이기도 합니다.

알고 있었다는 착각 — 사후예견편향의 실체
야구 경기가 끝나고 나면 주변에서 꼭 이런 말이 나옵니다. "아, 당연히 이길 줄 알았지." 제 경험상 이건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경기 전에는 그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는데, 결과가 나오고 나면 다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말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이것이 바로 사후예견편향(hindsight bias)입니다. 사후예견편향이란 어떤 사건의 결과를 알게 된 뒤, 그 결과를 자신이 처음부터 예측할 수 있었다고 착각하는 인지적 오류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tendency to overestimate the ability to have predicted an outcome"으로 정의합니다. 쉽게 말해, 일어나고 난 다음에야 '당연한 결과'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입니다.
왜 이런 착각이 생기는 걸까요? 이유는 인과관계를 거꾸로 읽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어떤 팀이 경기에서 지면, 우리는 그 팀이 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만 골라 설명하게 됩니다. 이길 수 있었던 이유들은 슬그머니 사라집니다. 결과가 시야를 좁혀버리는 것이죠.
이 현상은 사고 사례에서 특히 위험하게 작동합니다. 사고가 터지고 나면 어김없이 "예견된 인재(人災)였다"는 말이 나옵니다. 솔직히 저도 그런 말을 아무 생각 없이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프레임이 작동하면 자연스럽게 '알면서도 막지 않은 사람'을 찾게 됩니다. 문제는, 정말로 몰랐을 가능성이 큰데도 '알았을 것이다'라고 단정하는 데 있습니다. 이건 착각에서 출발한 단죄입니다.
심리학 연구에서는 이 편향이 인간의 긍정 편향(positive bias)과도 연결된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정상인은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와 반대되는 현상인 우울 현실주의(depressive realism)도 보고된 바 있는데,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자신에 대한 평가를 오히려 더 정확하게 한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인간이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 편향을 가진 개체가 더 강한 생존 동기를 가졌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과학도 속는다 — 확증편향과 카고컬트 과학
사후예견편향이 개인의 착각이라면,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은 그것이 집단으로 번졌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이 믿고 싶은 결론에 유리한 증거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불리한 증거는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경향입니다. 과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물리학자 로버트 밀리컨이 전자의 전하량을 측정했을 때의 사례가 있습니다. 이후 여러 연구자들이 전하량을 재측정했는데, 값들이 밀리컨의 수치를 중심으로 서서히 수렴하는 패턴을 보였습니다. 밀리컨의 값보다 너무 높게 나온 측정값은 '오류가 있을 것'이라며 걸러냈고, 가깝게 나온 값은 그냥 통과시킨 것입니다. 권위 있는 선행 연구가 후속 연구자들의 판단을 흐린 셈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문제는 학계 문화에서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을 카고컬트 과학(Cargo Cult Science)이라고 부릅니다. 카고컬트 과학이란 과학의 형식과 절차는 모두 갖추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인 '스스로를 속이지 않으려는 태도'가 빠진 연구를 말합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1974년 캘텍 졸업식 연설에서 사용한 개념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남태평양 원주민들이 비행기를 다시 불러오기 위해 활주로와 관제탑을 나무로 만들었지만 비행기가 오지 않았던 이야기에서 따온 것입니다. 형식은 완벽하지만 본질이 없다는 비유입니다.
카고컬트 과학이 반복되는 이유
카고컬트 과학이 반복되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재현 실험(replication experiment)을 기피하는 학계 풍조: 남이 한 실험을 반복하는 것은 '새로운 연구'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분위기가 존재합니다.
- 결과에 따른 출판 편향(publication bias): 유의미한 결과만 발표되고, 효과가 없는 결과는 묻히는 구조입니다.
- 과학적 성실성(scientific integrity) 부재: 자신의 이론에 불리한 데이터도 함께 공개해야 하는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생깁니다.
여기서 재현 실험(replication experiment)이란 다른 연구자가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을 반복해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과학의 신뢰성을 보장하는 핵심 절차인데, 제가 직접 관련 논문들을 찾아보니 심리학 분야에서 재현에 실패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사실이 이미 여러 차례 보고되어 있었습니다. 이른바 재현성 위기(replication crisis)로, 2015년 오픈 사이언스 협력 프로젝트가 심리학 논문 100편을 재현 시도했을 때 성공률이 36%에 불과했다는 결과가 충격을 주었습니다(출처: Open Science Collaboration, Science).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도 이 맥락에서 빠질 수 없는 개념입니다. 조작적 정의란 추상적인 개념을 측정 가능한 방식으로 구체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라는 개념을 연구할 때, '코르티솔 수치'나 '자가보고 점수'처럼 수치로 측정할 수 있게 바꾸는 과정입니다. 이게 없으면 "그럴 줄 알았어" 같은 사후 해석이 언제든 끼어들 수 있습니다. 확증편향을 막는 가장 실용적인 도구 중 하나라고 봅니다.
과학적 성실성(scientific integrity)이란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도 숨기지 않고 공개하며, 이론이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는 태도입니다. 파인만의 표현을 빌리면 "뒤로 몸을 기울이는" 자세입니다. 유리한 데이터만 골라 공개하는 것은 거짓말은 아닐지 몰라도, 과학적 성실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죠.
사후예견편향과 확증편향은 결국 같은 뿌리에서 자랍니다. 인간은 자신이 옳다고 느끼고 싶어하고, 이미 일어난 일은 처음부터 알았던 것처럼 재구성하려 합니다. 이 성질이 개인에게는 자존감을 지켜주지만, 학문과 사회적 판단에 개입하면 엉뚱한 죄인을 만들어내거나 반복되는 오류를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 편향들을 완전히 없애는 방법은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는 정말 그때 알았는가, 아니면 결과를 본 뒤에 알았다고 느끼는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습관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저도 여전히 그 질문을 이따금 까먹습니다만, 적어도 잊었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