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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밥을 세 끼 먹을까? (본질주의적 오류, 사후예견편향, 사법판단)

by tongdoctor 2026. 6. 1.

왜 사람은 하루에 세 끼의 식사를 할까요? 솔직히 속으로 "이거 당연한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는 없었습니다. 제가 '상식'이라 믿어온 것들이 생각보다 훨씬 얇은 근거 위에 서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의 민낯

제가 직접 겪어보니, 사람들이 가장 강하게 믿는 것일수록 그 이유를 물어봤을 때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왜 출근은 꼭 아침에 해야 하는지, 왜 계약서는 반드시 종이에 서명해야 하는지. 막상 "왜요?"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원래 그렇게 하는 거잖아요"였습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이 등장합니다. 바로 본질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입니다. 본질주의적 오류란, 어떤 것이 "그렇다(is)"는 사실을 "그래야만 한다(ought)"는 당위로 잘못 해석하는 인지적 왜곡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해온 방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옳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믿어버리는 현상입니다.

흥미로운 사례가 있습니다. 어떤 마을 사람들이 특정 나무 열매를 먹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세대가 바뀌면서 그 이유는 사라지고 "먹으면 안 된다"는 금기만 남았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식으로 형성된 상식이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왜 안 해야 하는지 아무도 테스트하지 않은 채 그냥 전달된 규칙들이요.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들의 이유를 의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도 잘 압니다. 질문하지 않을수록 일상은 편하고, 질문을 시작하는 순간 모든 것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요. 그렇지만 제 생각에, 바로 그 불편함이 사고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 본질주의적 오류가 위협받는다

이 오류가 특히 위험해지는 순간은 세상이 빠르게 변할 때입니다. 과거의 방식이 최선이었던 환경이 사라졌는데도, 뇌는 여전히 그 방식이 "당연한 것"이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진화 과정에서 빠른 판단을 돕기 위해 형성된 이 인지 구조가, 변화의 속도가 빨라진 현대에는 오히려 발목을 잡는 셈입니다.

사회심리학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연구는 평균에서 표준편차(Standard Deviation) ±2 이내에 속하는 사람들, 즉 전체 인구의 약 95%를 대상으로 합니다. 표준편차란 데이터가 평균으로부터 얼마나 퍼져 있는지를 나타내는 통계 지표입니다. 결국 우리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실 평균적인 인간의 특성이고, 그 범위를 벗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미 연구 대상에서 빠져 있습니다.

본질주의적 오류가 우리 판단을 흔드는 대표적인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해온 방식을 "옳은 방식"으로 착각할 때
  • 변화한 환경에서도 과거의 규칙을 그대로 적용하려 할 때
  • "왜 해야 하는가"를 한 번도 검증하지 않은 채 따를 때
  • 다수가 동의한다는 이유만으로 소수의 의견을 무시할 때

사람이 하루에 세 번 식사를 하는 것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해온 방식일 뿐, '옳은 방식'인 것이 아닙니다. '왜 해야 하는지'를 한 번도 검증하지 않은 채 그저 따랐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본질주의적 오류입니다. 다만, 세상이 빠르게 변하지 않아서, 아직까지는 행해지고 있는 규칙일 뿐입니다.

사후예견편향과 사법판단의 위험한 만남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사후예견편향(Hindsight Bias) 개념을 접했을 때, 처음엔 "아, 뭐 그런 거 있지"라고 가볍게 넘겼는데, 막상 실제 사건에 적용해보니 섬뜩했습니다.

사후예견편향이란, 어떤 결과를 알게 된 뒤에 "나는 처음부터 그렇게 될 줄 알았다"고 착각하는 심리적 경향을 말합니다. 결과를 먼저 보고 나면 뇌는 자동으로 그 결과를 설명하는 이유만 골라 기억하고, 반대의 가능성은 지워버립니다. 월드컵 경기가 끝나고 나서 "그 팀이 질 것 같더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이기기 전에는 이길 이유도, 질 이유도 있었는데, 지고 난 다음에는 질 이유만 보이는 겁니다.

사회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이 편향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인간이 인과관계를 처리하는 방식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구조적 특성입니다(출처: Psychology Textbook, College of the Canyons). 결과를 알고 나면 모든 것이 명확해 보이고, 따라서 "알면서도 막지 않은 사람"을 찾고 싶어집니다. 이 충동이 얼마나 강한지, 제 경험상 스스로도 자각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 편향이 사법 판단과 결합하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사법 판단에는 네 가지 결과가 있습니다. 진범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정확한 판단(Correct Hit), 진범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무죄 오류(Miss, Type 2 Error), 무고한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처벌 오류(False Alarm, Type 1 Error), 그리고 무고한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올바른 기각(Correct Reject)입니다.

여기서 Type 1 Error란 실제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오류가 있다고 잘못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법 시스템에서는 이 오류, 즉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것을 가장 심각하게 경계합니다.

허태균(2013)의 연구에 따르면 일반인은 처벌 오류와 무죄 오류를 비슷하게 두려워하지만, 경찰·검사·판사로 갈수록 처벌 오류, 즉 무고한 사람을 잘못 처벌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높아진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특히 범죄가 무거울수록 판사의 신중함은 더 높아지는 반면, 일반인은 오히려 중범죄일수록 처벌하고 싶다는 욕구가 커졌습니다.

제가 이 결과를 처음 접했을 때 드는 생각은 이랬습니다. 사법 시스템은 나쁜 사람을 풀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죄 없는 사람이 감옥에 가는 일을 막기 위해 설계된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건이 터진 뒤에 사후예견편향으로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었다고 착각하면서, "왜 막지 않았냐"며 담당자를 찾습니다. 그리고 판사가 시스템대로 판단해서 무죄가 나오면 "국민 상식에 어긋난다"고 분노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뒤집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 상식에 부합하는 사법 판단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합리적 의심의 기준(Reasonable Doubt Standard)이란, 유죄 판결을 내리기 위해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증거의 엄격한 기준을 말합니다. 이 기준이 높을수록 무고한 사람이 감옥에 갈 확률은 낮아지지만, 동시에 진범이 풀려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두 오류는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를 줄이면 다른 하나가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저도 처음엔 이 딜레마가 불편했습니다. 분명히 나쁜 짓을 한 것 같은 사람이 기술적 이유로 풀려나는 장면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건 당연한 반응이니까요. 그런데 그 분노 자체가 사후예견편향과 본질주의적 오류가 뒤엉킨 결과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판단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제가 도달한 결론은 하나입니다. 내가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것이 남의 말을 들을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출발점이라는 겁니다. 자신감에 차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의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제가 틀릴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순간에야 비로소 시스템의 논리가, 전문가의 판단이, 다른 가능성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것에 "왜?"를 한 번쯤 던져보는 것, 그게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지적 습관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학습을 바탕으로 작성한 의견 공유이며, 전문적인 법률 또는 심리학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www.canyons.edu/_resources/documents/academics/onlineeducation/Psych126TextbookFinalV1_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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