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어릴 때 배우는 것은 결과부터가 다릅니다. 저도 그 차이를 주변에서 직접 목격했고, 단순히 노력의 차이라고 보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가 언어 보편성과 변형 제약, 매개변수 이론에 있습니다.

언어 보편성과 변형 제약
일반적으로 언어는 그냥 열심히 들으면 배울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영어 유치원을 다닌 친구,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살다 온 친구, 그리고 저처럼 학원에서 문법책으로 영어를 배운 친구의 영어 실력은 수준이 아니라 결이 달랐습니다. 발음이나 문장을 만드는 방식 자체가 어딘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단순히 노출량의 차이라고 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LAD(Language Acquisition Device)라는 개념입니다. LAD란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가 제안한 개념으로,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 갖추고 있는 선천적인 장치를 의미합니다. 즉, 아이가 문법을 직접 배우지 않아도 언어 구조를 자연스럽게 내면화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장치 덕분이라는 주장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약 20여 년 전에 이 LAD의 실체로 지목된 유전자가 발견되었다는 점입니다. 바로 FOXP2 유전자입니다. FOXP2 유전자란 언어와 발화 기능에 관여하는 유전자로, 이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언어 장애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촘스키가 이론으로만 설명했던 선천적 언어 능력이 분자생물학적으로도 뒷받침된 셈입니다(출처: Nature).
이와 연결되는 개념이 변형 제약(transformational constraints)입니다. 변형 제약이란 문장을 변형할 때 허용되는 이동과 허용되지 않는 이동의 범위가 언어마다 다소 다르더라도 그 근본적인 제약은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개념입니다. 아이들은 누군가 이 규칙을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어떤 문장이 어색한지를 직관적으로 알아챕니다. 저는 그게 늘 신기했는데, 이 이론을 접하고 나서야 왜 그런지 이해가 됐습니다.
언어 보편성 논의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언어 보편성이 언어 전용 기제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일반 인지 능력의 산물인가
- 피아제(Piaget) 계열: 인지 발달이 먼저이며, 언어는 인지의 한 기능으로 나타난다
- 촘스키(Chomsky) 계열: 언어는 인지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이 논쟁은 지금도 완전히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촘스키 쪽 주장이 현재 언어학계에서 더 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매개변수 설정과 나이 효과
촘스키의 이론은 이후 더 정교해졌습니다. 초기의 변형 생성 문법(Transformational Generative Grammar)은 규칙이 너무 강력해서 실제로는 쓰이지 않는 문장까지 생성해버리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변형 생성 문법이란 심층 구조(Deep Structure)에서 표면 구조(Surface Structure)로 문장이 변환되는 과정을 규칙 체계로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밥을 먹었다"와 "밥이 철수에게 먹혔다"는 의미는 같지만 어순이 다른데, 이 둘이 같은 심층 구조에서 출발해 다른 표면 구조로 도달한다는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약 기반 이론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제약 기반 이론이란 모든 가능한 변형을 허용하되 특정 제약 조건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문장을 생성하도록 하는 이론입니다. 이후 GB 이론(Government and Binding Theory), 그리고 최소주의 프로그램(Minimalist Program)으로 이어지는 촘스키 언어학의 발전 방향이기도 합니다.
매개변수(parameter)는 이 맥락에서 각 언어가 보편 문법의 특정 선택지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는 동사가 문장 끝에 오지만 영어는 중간에 옵니다. 이것이 어순 매개변수의 차이입니다. 아이는 태어나서 자신이 노출된 언어를 들으며 이 매개변수를 자동으로 설정해 나갑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요.
제가 실제로 느꼈던 것도 이 맥락과 맞닿아 있습니다. 어릴 때 영어를 접한 친구는 문법 규칙을 의식적으로 외운 것 같지 않은데도 문장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냈습니다. 반면 저는 영어로 말할 때 머릿속에서 한 번 한국어로 생각하고 번역하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매개변수 설정이 이미 굳어진 이후에 새 언어를 배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임계기 가설(Critical Period Hypothesis)도 이 흐름과 연결됩니다. 임계기 가설이란 언어 습득에 최적화된 결정적 시기가 존재하며, 이 시기를 넘기면 완전한 언어 습득이 어려워진다는 이론입니다. 특히 음운(발음)과 통사(문법 구조) 영역에서 나이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MIT Press).
물론 늦게 배웠어도 영어를 굉장히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친구가 있어서 왜 그런지 늘 궁금했습니다. 아마도 일반 인지 능력이 특출나거나, 학습 전략이 매우 효율적이거나, 아니면 임계기 이후에도 일정 수준까지는 보완이 가능한 경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언어는 분명 특별하지만 그 특별함의 경계는 아직 완전히 그어지지 않은 셈입니다.
언어 발달의 기준점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생후 12개월 전후: 첫 단어 출현
- 생후 18~24개월: 두 단어 조합 시작
- 만 3세: 기본 문장 구성 가능 시기. 이 시기에도 단어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면 전문적인 평가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언어 습득이 단순히 듣고 따라 하는 것을 넘어 생물학적으로 정해진 일정을 따른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언어를 어떻게 배우느냐, 그리고 언제 배우느냐는 단순한 학습법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천적 장치, 유전자 수준의 기반, 임계기라는 생물학적 타이밍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저처럼 영어를 나중에 배운 입장에서는 이 사실이 조금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이의 언어 발달을 관찰할 때는 이 이론들을 떠올리며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됩니다. 언어는 보편적이면서도 개인마다 다르게 펼쳐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 관심이 생겼다면, 피아제와 촘스키의 논쟁부터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canyons.edu/_resources/documents/academics/onlineeducation/Psych126TextbookFinalV1_2.pdf